일본

동부이촌동

서경이 2007. 10. 19.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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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일본 맛이 있는 곳 동부이촌동(1)

왕복 4차선 도로, 양 옆으로 죽 늘어선 아파트 단지. 아파트보다 야트막한 도로변 3, 4층짜리 상가에는 과일가게며 꽃집, 빵집 같은 가게가 빼곡히 들어서 있다. 그 거리는 정말 평범하다. 그런데 조금만 자세히 보면 평범하지 않고 신기한 뭔가가 하나 둘 눈에 들어오는 곳…. 동부이촌동을 찾아가 보았다.  

평범함 속에 감춰진 특이함

‘동부이촌동’. 아무리 상세한 지도를 뒤져도 나오지 않는 동네 이름이다. 하지만 택시를 타고 “동부이촌동이요.”라고 하면 다들 알아서 가 준다. 지도에도 안 나온 동네인데 말이다. 동부이촌동의 행정상 이름은 이촌동이다. 이촌동은 한강대교를 기준으로 1동과 2동으로 나뉘는데, 그래서 지도에는 그렇게만 나와 있을 뿐인 것이다.
어쨌든 이촌1동보다 동부이촌동으로 더 많이 불리는 이 동네는 아파트 단지로 가득 찬 평범하고 조용한 주택가처럼 보인다. 그런 이 동네에 무슨 특별한 것이 있을까?

우선 리틀 도쿄라고 불릴 만큼 많은 일본인들이 모여 산다. 일본인촌이 언제부터 형성되었는지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하지만 조선 말기 개항이 되면서 서울에서도 특히 용산 일대에 일본인의 왕래가 잦아졌는데, 그때부터가 아닐까 추정해 볼 뿐이다.
동부이촌동을 길게 가로지르는 이촌동길. 눈을 크게 뜨고 두리번거리며 이 길을 걷다 보면 또 하나 눈에 띄는 점이 있다. 바로 부동산 중개 사무소에 나붙어 있는 아파트 시세다. 강남에 전혀 뒤지지 않는 집 값은 이 동네가 강북의 오래 된 부자 동네임을 말해 준다. 아파트 이름도 부촌답다. 왕궁, 로얄, 렉스…, 뭔가 노블레스다운 느낌을 주려 한 이름들.

옷가게도 참 많다. 꼭 여대 앞처럼 말이다. 옷가게만큼 많은 것이 또 음식점이다. 중국 음식점, 태국 음식점, 이탈리안 레스토랑 등 종류도 정말 다양하다. 하지만 가장 많이 보이는 건 일본 음식점이다. 보통 일식집이라고 말하는 고급 일본 음식점부터 초밥집, 우동집, 주점인 로바타야키까지…. 다른 동네에도 있지만, 이렇게 모여 있는 곳은 드물지 않나 싶다.

간판에 영문과 일본어 가타카나가 함께 적혀 있는 식료품점도 있다. 일본산 쌀부터 각종 냉동식품, 통조림, 과자까지 웬만한 일본 식료품은 다 갖추고 있는 ‘모노마트’. 손님의 절반 정도가 일본인이고, 점원도 한 명은 한국어를 할 수 있는 일본인이다. 손님이 가게에 들어섰을 때 점원이 “이랏샤이마세!”라고 인사하면 일본인, “어서 오세요!”라고 인사하면 한국인 손님이다. 묻지 않고도 바로바로 알아보는 게 신기하다.  

진짜 일본 맛이 있는 곳 동부이촌동(2)-아지겐

일본 서민 음식 총집합

우리나라에 있는 일본식 주점은 대부분 이름이 ‘로바타야키’다. ‘로바타’는 화롯가를 말하고 ‘야키’는 구이라는 뜻이니 로바타야키라면 화롯가에 앉아 즉석에서 뭔가 구우며 먹는다는 얘기가 되겠다. 하지만 일본에서 로바타야키라는 이름의 가게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일본 대중 주점은 ‘이자카야’라고 하며, 간단한 식사를 동시에 할 수 있는 곳이다. 요즘엔 우리나라에도 로바타야키라는 이름이 아닌 이자카야가 홍대 앞이나 강남 쪽에 많이 생기고 있는데, 대부분 인테리어는 그럴싸하지만 음식 맛에 개성이 있는 집은 드문 듯하다. 그런데 이 동부이촌동에서 진짜 일본식 대중 음식점을 찾은 것이다. 그것도 두 군데나….

첫 번째 집은 이촌동길에서 골목 안으로 한참을 돌아 들어가야 겨우 찾을 수 있는 ‘아지겐(味源)’. 일본에서 25년간 이자카야, 중화 요릿집, 라멘집을 경영한 사토 에이지 씨가 한국에 자리를 잡고 문을 연 곳으로, 그 세 가지를 한꺼번에 합친 형태의 가게다. 우리가 보통 ‘일식’하면 떠올리는 음식은 일본에서도 고급 요릿집에나 가야 먹을 수 있는 것이며, 대중적인 음식은 우동이나 라면, 덮밥, 중화풍의 음식이다. 재미있는 건 우리는 자장면을 우리나라 음식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일본인들은 중국 음식이었던 볶음밥, 라면 등을 모두 자기들 것으로 받아들였고, 웬만한 일본식 중화 요리는 다 일본 음식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아지겐의 음식은 일본 대중 음식 모음편 같다. 메뉴판을 펼치면 오니기리(주먹밥)와 오차즈케(녹차를 부은 밥) 같은 아주 간단한 식사부터 다양한 돈가스, 각종 돈부리(덮밥), 라멘, 대표적인 술안주인 야키도리(닭꼬치구이), 야키교자(군만두)까지 일본인들이 즐겨 먹는 일상적인 메뉴가 90여 가지나 있다. 종류가 이렇게 많은데 하나하나가 제 맛을 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사토 씨의 25년 노하우 때문인지 솔직히 다 참 맛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라멘과 중화 일품요리는 다른 데서 찾기 어려운 맛을 낸다. 문을 연 지는 2년쯤 되었는데, 처음엔 한국에 살고 있는 일본인들이 손님의 대부분이었지만 지금은 한국인 손님이 더 많다고 한다. 한국에서 구할 수 없는 재료는 사토 씨가 한 달에 한 번씩 일본을 드나들며 구입해 온다. 맛을 굳이 한국식으로 바꾸지 않아도 좋은 재료로 자부심을 가지고 만드는 음식을 한국 손님들이 인정해 주는 것이 그의 기쁨이라고 한다.  

메뉴판을 보니 한쪽에 ‘안주는 1인 한 가지 이상 주문 바랍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고개를 들어 벽을 쳐다보니 아이들이 소란을 피우지 않도록 주의해 달라는 내용과 지키지 않을 경우 ‘퇴점’시킬 수도 있다는 강력한 말도 나붙어 있다. 아이들을 버릇없이 키우는 부모가 점점 많아지는 건 한국이나 일본이나 마찬가지란다. 그렇다고 손님에게  불친절하냐 하면 그것은 절대 아니다. 다만 주인도 자부심을 가지고 최선을 다할 테니, 손님도 손님으로서의 예의를 지켜주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그만큼 음식에 있어 자신이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증거이기도 하겠다.  

식품 전문가에서 요리사로 변신

또 한 군데 진짜 일본 맛을 내는 음식점도 아지겐처럼 꼭꼭 숨어 있긴 마찬가지다. 이촌동길 가운데쯤의 한 아파트 상가 지하에 들어서면 뭔가 튀기고 볶는 기름 냄새를 맡을 수 있다. 냄새를 따라가면 꼭 옛날 백화점 지하 식품부의 스넥 코너처럼 높다란 카운터 형태로 되어 있는 가게, ‘미타니야(三谷屋)’가 나온다.

음식 맛이 하도 좋아 당연히 주인인 미타니 씨가 오랜 경력의 요리사일 거라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이전에 음식점을 한 적은 없고 일본 식품회사에서 30년 이상 일했다고 한다. 그 후 한국에서 일본 냉동식품 판매를 하게 되었고, 그 식품을 알리기 위한 모델 숍으로 이 가게를 열게 된 것이란다. 좋은 재료를 알아보는 까다로운 눈, 맛있는 음식 먹기를 좋아해 일본 전국을 자주 돌아다니면서 이런저런 음식을 먹어 본 경험에서 나오는 솜씨라니 놀랍기만 하다. 그래서 지금도 가게 안쪽에 놓인 커다란 냉동고에는 우동이나, 라멘, 소바 등의 면과 메로, 참치, 연어 같은 생선에 낫토까지 가득 들어 있고 판매도 한다. 입소문을 타고 알려져 식품 구입을 하러 들르는 손님도 꽤 많다.

이곳은 우동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음식 종류는 60가지 정도로 굉장히 다양하며, 메뉴는 한국어판 일본어판 두 가지 버전으로 준비되어 있다. 우동이나 덮밥 같은 식사나 구이, 볶음, 조림, 회, 사라다(왠지 샐러드보다 ‘사라다’가 더 잘 어울린다) 등 식당 음식 같지 않고 집에서 먹는 음식 같은 메뉴가 많다. 식사 메뉴에만 가격이 씌어 있고 나머지는 음식 이름만 있어 조금 당혹스럽지만 그렇게 걱정할 건 없다. 요리의 가격은 1만원대 정도로, 별로 비싸지는 않다. 양은 좀 적은 편이지만.

주인인 미타니 마사키 씨는 자신의 가게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포장마차 비슷한 거지요.” 대단한 메뉴는 아니지만 맛이 기가 막혀 한번 먹어 보면 또 찾게 되는 그런 포장마차 같은 곳…. 또 뭐랄까, 우리나라로 치자면 한정식집이나 고깃집 같은 곳이 아닌 그냥 아주 맛깔스런 백반집 정도라고 하면 적당할까? 점심에는 간단하게 밥을 먹는 손님이 많고, 저녁에는 반주까지 곁들일 수 있는 그런 곳 말이다.

속속 재건축되는 높다란 고층 아파트 단지가 한강을 싹 가려 버리고, 또 한강 남쪽 편에서 바라다 보이던 남산까지 병풍처럼 막아 버려아쉬움을 주던 동부이촌동. 이 동네에서 진짜 맛을 지니고 꼭꼭 숨어 있던 작은 가게를 찾아내니, 어린 시절 소풍 가서 보물찾기에 성공했을 때 같은 기분이 느껴진다. 상품은? 아무 데서나 먹을 수 없는 진짜 맛있는 음식!

<> SINCE 2001 모노마트

일본제품만 100% 판매하는 모노마트엔 과연 한국인들이 올까?

정답은 예스. 전체 이용객의 40%가 한국인이다. 한남동이 대사관저가 밀 집된 지역이듯 용산구 동부이촌동은 한국 내에서 일본인들이 가장 많이 모여 사는 지역이다. 특히 동부이촌동을 가로지르는 대로변은 웬만한 백 화점이 부럽지 않을 만큼 다양한 물건과 수준급의 식당들이 즐비한 소비 의 메카. 모노마트는 이런 두가지 입지조건을 100% 활용한 일본식품전문 슈퍼마켓이다.

10평 남짓한 작은 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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